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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일반 논리학

약어 일람의 뜻

by 너의 친구★ 2021. 11. 13.

9약어 일람의 권
전전회에 서술한 '역연방식'에서는 다종다양한 각국의 약어나 약호는 가능한 한 생략하고
마는 것을 제안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몇 가지 약어는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혼란한 사용법을 피하기 위해서도, 또 문헌을 읽을 경우를 위해서도 각국 약어 대조표를 게재한다.
도망치기로 하다.다른 라틴어로 역사책을 자주, 혹은 가끔 등장하는 줄임말
도 열거해 두다.
라틴어의 경우 본래 이탈리아어로 사용되어야 하겠지만 현재의 서양어의
모기에 녹아들어 무르익은 경우도 많고, 로만체에서 사용하는 것이 보통으로 되어 있는 말(예시.
에바 A.D.)도 적지 않고, 약어인데도 생략표의 마침표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있다.
또, 이탈리아로 할 것인지 여부는 반드시 일정하지 않은 것이 실정이므로 여기에서는 라
텐어에도 이탈리아를 하지 않았다('역연방식'란만 예외). 단, 우리가
사용할 때는 이태릭스로 하는 것이 좋다.
대문자로 시작(머리글자)여부도 여러 가지 유의가 있음은 전술했다(본란 1.2 참조).
따라서 여기에서는 항상 머리글자로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소문자로 시작하고 있는데,
말할 것도 없이, 이것들도 문두에 올 때는 머리글자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덧붙여 '기타'란은 주로 이탈리아어·스페인어의 몇 가지 예를 기입한 2
지나지 않으며, 베트남, 핀란드어는 최근의 본지의 예에서 따온 것으로 결코 망라적.
없는 것이 아니다.
라틴어 약어 목록
· ibid., ib. = ibidem [동상서] vide [논문의 주에 대하여 ON]
· op . cit . = opere citato 「 前掲 書 ( 論文 ) 」 vide , ibid . ⑵
· loc. cit. = loco citato '앞으로 친 곳'
- cf. = confer "비교참조하라"
· v., vid. = vide "참조하라"
· idem「동일 저자」
· etc. = et cetera '등등, 기타'
· A.D., a.D. = Anno Domini, anno Domini '기원후'의 뜻인데, 원호의 앞에 온다."A.D. 500." 인
미니 영어의 B.C.(기원전)는 연호 뒤에 온다." 500 B . C . "
· ca., c. = circa '약, 대략'. "ca. 1870."
· ed.cit. = editio citata [전출, 기출판]
· e.g. = exempli gratia [예를 들어]
· et al. = et alii '및 기타' (사람에 대해 사용)
22
- i.e. = id est '즉'
· infra「아래로, 뒤에서 나온」vide infra」(「아래 문장 참조, 뒤에서 서술하는 것을 보라」).페이지 수
가를 붙이기도 한다.
· N.B., n.b. NB, NB. = nota bene "(다음 사항에) 주의, 비고, 단…"
· passim(약 pass.) '곳곳에, 여기저기'. 페이지 수를 계속해서, '96,192 et passim'과 같이
사용하기도 한다.Cf. Supra "논문 주에 대하여 (3)" .
·q.v.=quod vide(복 q.v.=quae vide)「이(이러한)항들을 보라」.사전 등의「견
여항목'에 쓰다.
· r , ro
, Ro.=recto; r.f.= recto folio; f.r.= folio recto 오른쪽(홀수) 페이지, 앞 페이지, 종이 표
측. "r"에는 생략부의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 sc . , scil . , sciz . = scilibet 「 すなわち 」
· seq., sq. = sequens(복 seq., ss. = sequentes) '및 그 이하'. 예를 들어, "1927 et seq."
처럼 사용할 수 있지만, f.나 f.는 페이지수나 행수에 이용한다.
·sic '엄마, 원문의 엄마'. 인용자가 삽입하는 단어이므로 브래킷에 넣어 사용하며 때때로 느낌.
탄표를 달기도 한다." der Graf [ sic ! ] Trockij "
·supra「위에, 앞에, 앞에, 앞에, 앞에.」이 용법에 대해서는, vide s.v. "infra".
· s.v.= sub verbo, sub voce '…의 말, 표제 밑에', '…의 말, 표제어를 보라'.
· v , vo
, Vo . = verso ; v . f . = verso folio ; f . v . = folio verso 左側 ( 偶数 ) ページ 。뒤쪽 페이지,뒤쪽
종이. "r" (q.v.) 의 반대.
· viz = videlicet '분명히, 당연, 즉'.
처음으로
대한민국(이하 '한국'이라는 1
)은 일본에 인접한 지리적 관계도 있으며, 일본
와 가장 관계가 깊은 나라 중 하나임은 역사상으로도 분명하나 1910년 병합 이후 35년
연간 일본 통치하에 놓이는 식민지 시대를 경험하기도 하였으며, 동국 사람들의
가 나라에 대한 시선은 복잡하고, 역사인식을 둘러싸고 종종 격렬한 대립이 반복되고,
있다. 한편, 최근, 한국의 경제적인 대두나, 인적, 문화적인 교류의 심화도 있어, 일본
에서 이 나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 나라에 친근감을 갖는 일본인도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또한 경제적인 측면 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이라고 한다.)의
핵·미사일 개발 문제나 중화인민공화국(이하 '중국'이라는 2
)의 적극적인 해양 진출로
도를 놓고 안보 측면에서 한국과의 공조가 강화돼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2012년 8월 10일,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시마네현의 죽도에 이명박대통령
영이 동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상륙해, 천황 폐하를 둘러싼 발언도 함께, 정치 레벨에
한일관계는일시에긴박해지고양국의인적문화교류에도어두운그림자를 드리우는등양국관계
을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의 어려움이 재차 부각되었다.이 죽도 문제에 대해서
하여 일본이 영토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역사인식문제라는 관점에서 일본의
대응을 비판하는 점만 봐도 21세기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새로운 날
한관계 구축을 위해 한국에서의 대일 역사인식이 창출되어 온 배경을 이해
해석해 나가는 것이 향후의 구체적인 대처를 진행시켜 나가는데 있어서도 중요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낭패.
한국은 전쟁 전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아시아 신구제국 사이에서 근대국가의 길을 모색하다가
일제 강점기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을 둘러싼 전후 처리 과정에서
독립을 실현하게 되었지만, 냉전의 격화로 남북 분단 상황에서 국민국가와
시의 국가 건설을 추진해 왔으며, 거기서는 '방일(防日)'과 '반공(反共)'이라는 두 축 아래 국가
집안의 정통성을 확립해 가고 있다.한국의 대일 역사인식 형성에 일제시대 기억이 커
크게 영향을 미쳤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나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정상의 문제나 국제
관계 문화와 같은 다면적 요인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문제의식 아래 본 논문은 선행연구를 소개하면서 먼저 조선왕조 말기의 근래에

1 본 논문은 1948년 대한민국 성립 이후를 '한국'으로 표기한다.아울러 그 이전 조선왕조가 통치할 때
1897년부터 1910년 한일강제병합까지는 대한(大韓), 그 이전을 조선(朝鮮)으로 표기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중국'이라는 호칭을 중화인민공화국의 약칭으로 사용함과 동시에 그 이전의 역대 왕조를 포괄.
하는 개념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입법과 조사 2013.2 No.337 (참의원 사무국 기획조정실 편집·발행)
입법 및 조사 2013.2 No.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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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위한 노력과 그 특색, 일본 통치 및 냉전이 한국 내셔널리즘 형성에 끼친 그림자
영향에 대해 고찰하고, 아울러 전후 일본의 역사인식 형성에 대해서도 확인 지정
따라서 한일간의 역사인식갭 구조를 고려한 후 새로운 한일관계 구축을 위해
약간의 유의점을 지적하기로 한다.
1. 조선말기 근대화 동향과 그 특색
조선왕조는 1392년 이성계에 의해 세워졌고, 1910년 우리나라에 병합되었다.
될 때까지 500년 이상 한반도에 존재했던 왕조이자 명나라, 청나라 등 중국
왕조를 조공하는 책봉 체제 속에서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였다.그러나 이 왕조는 19
세기 후반 이후 열강 국가들의 제국주의 압력에 직면하면서 생존을 위한 근대화가 모색
되었는데, 거기서는 정치·외교면과 더불어 사상면에서도 동아시아 질서의
중심에 있던 청나라로 부상하던 우리나라가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여기요
그럼 도쿄대학교 대학원 교수인 월각달언의 연구를 단서로 왕조 말기, 특히 대한제국
1897-1910)을 실현하기 위해 고종 등 왕조 측의
행동과 근대화를 위한 노력에 사상적 영향을 미친 조선개화사상을 대표하는 유
유길준의 사상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본다.
(1) 고종의 황제 즉위와 대한제국
19세기 후반에 조선은 청나라를 정점으로 하는 책봉체제 아래에 있었으나, 1876년에는 조일수호조규,
1882년에는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는 등 여러 나라와 조약을 체결하는 관계가 된다.
이를 통해 조선은 국제적으로는 청나라와 대등한 입장으로 비쳐지지만, 청나라는 종속관
계를 이유로 계속 조선의 국가주권을 제한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양
재단체제라고 불리기도 했던 3
1882년 7월 궁중의 권력투쟁인 임오군란 4
가 일어나는데,
청나라는 이에 개입해 이후 조선에 대한 간섭을 강화하면서 실질적인 식민지화라는 견해도 있었다.
있는 상황이 발생하기5
이러한 가운데 고종이나 민씨 세력을 중심으로 한 조선 정부에는 '반청
노선'의 대두, 나아가 '반청 자주 노선'의 추진이 보이며, 청나라의 지배 강화에 대한 저항,
반발이 개화파의 입장에서 볼 수 있었던 인식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조선왕조의 이러한 대외적 태도 변화는 외교 의례면에서도 확인된다.구체적인
예로서는 군주의 존칭에 변화가 보이며, 청나라를 제외한 구미(歐美)나 일본에 대한 문서에서는 1888년인가
나청과 대등해지는 「폐하」가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한편 청나라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격하의
「국왕 전하」를 사용한다고 하는 것처럼, 면종 복배의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이 배경에는 앞에
년 조선왕조가 행한 유럽 각국에의 전권공사 파견이 청나라의 간섭으로 실패로 돌아간 데 대한

3월각 달언 『조선개화사상과 내셔널리즘 근대 조선의 형성』(도쿄대학출판회 2009년) 23~24쪽
4 고종이 어린 시절 집권하여 양이정책을 추진해온 고종의 친부 흥선대원군은 성장한 고종과
왕비 민씨 등에 의해 정권을 빼앗기고 있다가 대원군이 획책하면서 일어난 반란으로 일본인 군대의
고문과 일본 공관원 등이 살해됐다.청국군의 개입으로 진압된 뒤 대원군은 청나라로 끌려가 연금되었다.
5월각 전게서 24쪽
6 동 상단 143~144 페이지
입법 및 조사 2013.2 No.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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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7
1890년 신정대왕대비 조씨의 장례식 때는 청나라로
의 부고사 파견이나 청나라로부터의 조칙사 수용을 거부하려는 등 8
청나라와의 대등성을 주장하며,
대청 자존 의식을 표명하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9

이러한 가운데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둘러싸고 긴장관계에 있던 일본과 청나라는
1894년 갑오농민전쟁(동학당의 난) 처리로 대립을 격화시켜 청일전쟁이 발발하였으나,
전후 양국간에 맺은 시모노세키조약에 의해 조선은 결과적으로 책봉체제에서 해방된다.이거
를 계기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확대됨과 동시에 조선에서는 급진적 개화파인 김
홍집(洪集) 등을 중심으로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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