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분쟁 후 사회 전통적 권위의 지위
본론 첫머리에서 기술하였듯이 아프리카에서 냉전 종식 전후부터 빈발한 대규모 내전의 대부분은 종식
결말이 났지만, 분쟁 이후 사회는 평화 정착을 위해 분투해야 할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주민 간의 토지 배분을 누가 어떠한 원칙에 따라 조정해 나갈 것인가는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겠지. 10)
귀환 난민에 대한 토지 배분이라는 절박한 문제가 존재하고 있는 점과 더불어
농촌 지역에서의 토지 배분 방식을 역사적으로 규정해 온 권력 관계가 내전으로 많은 일반 시민들.
이 동원된 이유의 일단을 양성해 왔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에 걸쳐 처참한 내전이 전개된 시에라리온에서는
분쟁 후의 부흥 과정에서 전통적 권위의 취급을 둘러싸고 논쟁의 대립이 일어났다. 오치아이[2008]의 정
이치에 따르면 수장은 식민시대에 징세나 법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독립 후에도 정치
브로커적인 존재로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나 내전이 발발함에 따라 그 행정기반은
파괴되었다. 한편의 논자는 분쟁 후의 지방자치제도 개혁은 상실되기 시작한 수장의 정치적 영향력을
회복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농촌 주민은 외부 세계의 영향으로부터 자기들
생활을 지켜주는 '비호자'로서 수장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또 한편
의론자들은 토지 배분 과정 등에서 수장이 행사하는 권력에 의해 주연화를 당해 온 젊은이들의 불만과
분노가 그들을 반정부세력으로 참여시키는 감정적 기반이 되었다고 지적하는
Richards 2011). 이 인식에 입각하면 분쟁 후에 수장의 권위를 재흥하는 것은 젊은이의 불만과 분노
이를 재생산하여 분쟁이 재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며, 평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농촌 지역에서는 전통적 권위를 완전히 해체할 수 있도록 수평적 인간관계를 형성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촌부의 토지를 둘러싼 지방 대립은 때로는 국가 규모에서의 내전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를 생각하면 [Cramer and Richards 2011], 토지관리에 큰 역할을 해 온 전통적
권위의 처우는 분쟁 이후 사회의 미래에 현저한 영향을 끼치는 정치적 과제이다.
9)상술한 대규모 인터뷰 조사에서는 '로컬 분쟁의 해결'에 '전통적 지도자'가 가장 강한 책임
책임을 진다고 응답한 비율은 19개국 중 케냐는 5번째, 잠비아는 8번째, 우간다는 11번째로 높다. 또,
'토지의 배분'에 '전통적 지도자'가 가장 강한 책임을 진다고 응답한 비율은 19개국 중 잠비아는 5번째,
우간다는 일곱 번째, 케냐는 열한 번째로 높다[Logan 2011].
분쟁후 사회의 토지문제에 초점을 맞춘 논집으로서 Pentuliano[2009]나 Takeuchi[2014]가 있다.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연구 제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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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통적인 권위는 단지 정책적 위치의 변화에 순종하는 수동적 존재만은 아니다.
집안에 수록한 가와구치 논문의 무대가 되는 우간다 북부의 아촐리 지역에서도 1980년대 후반부터 격심함.
시위의 내전이 벌어졌고 수장의 권위는 내란 중에 벌어진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크게 떨어졌다.가와구치는 내전
나중에 관광지로 주목받기 시작한 지역의 토지소유권을 둘러싸고 '선주자'와 '후착자' 사이에
이러한 갈등 사태를 해결하는 데 수장이 주도적 역할을 했음을 보여 준다.
이 사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내전이 일단락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귀찮은 땅 싸움을 진정시키고
있을 정도의 정치적 영향력을 이미 수장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995년에 개정된 헌법에 의해
전통적인 권위의 법적 승인은 수장의 영향력의 부흥을 초래한 한 원인이지만 헌법상에서는 그
지위가 어디까지나 '문화적'인 것에 머무른다는 점이 강조되어 있었다. 가와구치는 수장이 단기간에 그늘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이유로서 내전 후의 지역 부흥에 참가해 온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지만
등 각 지역의 수장이 내부에 알력을 내포하면서도 아촐리 전체의 수장 연합을 조직화함으로써
카와구치는 사람들이 집합적 권위로서의 정통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을 들어 왔다.
을 모아 회의를 열고, 그 자리에 참가해 의견을 진술하는 등의 개개의 실천을 통해
장이 지역 주민으로부터 '아철리 전통의 수호자'로서의 승인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통적 권위는 정부나 국제사회로부터 일방적으로 조작당하는 대상이 아니라 지역 외부로부터 모방되는
된 자원을 유용하면서 자기의 정통성을 확립해 나가는 전략적 행위자임이 이론.
글에서는 명료하게 나타나 있다. 11)
5.목축사회에서의 토지분쟁과 권력배치의 변용
아프리카가 식민지화된 이후 여러 가지 토지 정책에서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계속 받아 왔다.
민간 사회 집단은 국가의 중심부에서 떨어진, 특히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에 살면서 수렵 채집
목축에 의존하여 이동의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해 온 유동민일 것이다. 그들이 이용해 온 공유
땅이 정부로부터 '무인지대'로 간주되어 농지나 자연공원으로 전용되어 온 점과 12) 토지사
유화 정책에 의한 공유지의 분할이 유동민 사회에 환경 열화나 사회 계층화를 초래해 온 것.
는, 13) 아프리카 각지에서 많은 상세한 보고가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메구로 논문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동아프리카 목축 사회에서는 집단간에 지역적인 분규가 일어나고 있다.
11) 분쟁 후의 시에라리온에서 수장의 취급을 둘러싼 논쟁이 일어났던 것처럼 아촐리에서도 수장에 대한 평가.
는 크게 나뉘어져 있다. 전통적 권위의 '폭력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최근의 수장 부흥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이론
고에 Branch [2014]가 있다.
12) 목축사회에 관해 말하자면 근년에 들어 적어도 정책 제언이나 법률 문면상으로는 반·목축적인 토지정책으로부터의
변화해 [e.g., AU 2010; Musembi and Kameri-Mbote 2013], 특히 서아프리카 제국에서는 목축민의 토지권
이익보호 선진입법 시행 [Hesse 2010]. 유동민 토지권리가 국내법과 국제법으로 얼마나 보호되나
할 수 있는가를 정리한 법학자의 저작도 참조 [Gilbert 2014].
단, 목축민 상부르가 살고 있는 케냐 북부의 시안부 지역에서는 토지 사유화가 진행되어 토지를 둘러싼 분쟁
위가 감소하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보고되었다[Lesorogol 2008].
사가와 : 현대 아프리카의 토지 분쟁과 전통적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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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이 빈번히 발생하였으나 그 원인을 토지 이용에 영향을 준 외적인 요소와 관련지어
검토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많은 연구자들은 목축지역의 분쟁은 토지 점유나 영역의 확장으로
아니라 가축의 약탈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정부나 개발기관도 가축의 약탈공격을 목축민의
'전통적 문화'로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14) 동아프리카 목축지역의 분쟁과 토지를 둘러싼 막
러나 정치 상황과의 관계에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동시에 민주화
라고 지방분권화가 진행되고, 특히 케냐나 에티오피아에서 민족적인 범주에 대응하는 형태로 행정구의
재편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배타적이고 영속적인 영역의 획득을 목적으로 한 분쟁이 목축지역에서 다수
발했기 때문이다 [Schlee 2011]. 최근의 연구가 일제히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분쟁에
젊은이를 동원하고 있는 것은 자기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도구로서 폭력을 이용하는 것.
남녀노소 정치인이며, 지금까지 젊은이들의 행동을 관리해 온 전통적인 권위자인 장로의 그림자
그 영향력은 급속히 쇠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가와 2009]
케냐에서는 행정구 재편에 더해 최근 그 수가 증가하고 있는 커뮤니티 주체의 보전에
의거한 민간보호구역(CBC: Community Based Conservancy)의 설치 [메구로 2014]도 토지를
둘러싼 집단간의 대립관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15) 특정 에스닉 집단에 보호구역의 공동
토지소유권을 부여하고 그 이외의 집단의 성원을 보호구역에서 일률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지속가능
가능한' CBC의 조건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Greiner 2012]. 여기에서도 분쟁의 발생과 수습
다발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정치인들인데, 예를 들면 케냐 북서부에 있는 리프트바
레이 주에 사는 포코트와 상브르는 20세기 초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여 양 집단이 공동으로 이용하고 있던 토지를 상브르의 정치인이 보호구역으로 등록하려고 시도하고,
코트의 배제를 계기로 무력충돌이 발생하였고, 2006~2009년까지
수백 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Greiner 2012, 2013]. 일찍이 가축 방목지 등을 둘러싼
대립 해결에 기여해 온 장로의 권위는 쟁점이 되는 토지의 규모나 경제 가치가 커지는 두 가지
이후경으로 물러나 중앙 정부나 대규모 자본과 두터운 유대를 가진 국회의원들의 재량이 강해진다.
경향이 동아프리카, 특히 케냐 16)의 목축사회에서 널리 나타난다.
본 특집의 메구로 논문이 대상으로 하는 케냐 남부 국립공원 주변에 위치한 마사이 사회의 분쟁에서
또한 전통적 권위의 존재감은 희박하다. 메구로는 토지 소유 형태가 다른 3개의 보호 구역에서 발생.
Greiner et al. [2011]은 이러한 인식을 분쟁의 역사적 동태를 무시한 것으로 비판한다. 그들에 의하면,
가축 약탈을 주목적으로 한 공격은 행정 구간의 경계 관리를 엄격하게 한 식민지기에 지배적이 된 '팍스브리'
'타니카가 가져온 산물'이며, 식민지화 이전의 그 싸움이 영역 확장을 주목적으로 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 자연보호구역이 설치될 때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토지나 자원에 대한 권리는 종종 일방적이고
폭력적으로 부정되어 왔다. 1990년대부터 자연보호 영역에서 '커뮤니티 주체의 보전'의 생각이 보급된 것
의 현재는 '커뮤니티 주체의 보전'을 계기 내지 구실로서 정부나 기업, NGO에 의한 주민으로부터의 '흙
'지강탈'이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는 [Nelson 2010]. 이 점에 대해서는 본 특집에 기고한 메구로 노리오
님으로부터 교시를 받았다.
16) 케냐에 있어서의 토지분쟁에서 행정과 관습법이 완수하는 제도적 역할에 대해서는 그 역사적 변화도 포함하여 취급한 히라타.
[2009]가 참고가 된다.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연구 제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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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토지나 자원의 관리를 둘러싼 알력이 어떠한 액터의 주도로 해결로 향하였는가.
을 분석한다. 각 보호구역에서는 보호구역 관리를 담당하는 운영회사의 선택을 둘러싼 주민 간의 대립, 보호
구의 개발을 둘러싼 주민과 NGO의 대립, 야생동물에 의한 위해를 둘러싼 주민과 야생동물이나 정부와
의 대립 양상이 빚어지고 있지만, 어떤 사례에서도 전통적인 권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위력은 20세기 초 영국 식민지 정부와의 토지 협상 시에는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집단 런치나 야생동물 보호구역이 창설되어 이전과는 다른 단위와 원리에 의거하여 그 운영모체
이 조직화됨으로써 토지 문제 조정에서 그들이 담당할 역할이 거의 소실되었다.결과적으로
하여, 현재는 집단 런치 관리자인 운영위원회의 간부나 토지의 사적 소유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개인과 더불어 마사이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이 분쟁의 조정자로서 큰 영향
지역사회 외부에 활동의 거점을 둔 정치인들이 정부나 기업과의 교제를 통해
교섭 장면에 관여해 옴으로써 주민의 절실한 생각이 교섭 과정에서 버려질 우려가 있다.
한편, 주민만으로는 획득하기 어려운 정치적 교섭력이 지역사회에 초래될 가능성
도 있다. 메구로는 현대마사이사회의 권력관계의 동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주민이 이 양
그는 정의적인 정치인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6. '토지 강탈'에 직면한 지역사회의 현재
2000년대 후반부터 토지
카테고리/일반 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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